이삭에 벼 알 많은데…
추수해보니 쭉정이가 우수수
흙이 묻은 장화와 옷, 곡갱이, 새까맣게 탄 얼굴이 한 눈에 봐도 벼를 베기 위해 나온 농부의 모습이 보이지만 먼발치에서 한 숨만 내쉰다. “수확할 것도 없어유. 쭉정이 아니면 싸라기야…”
멀쩡히 농사를 지어 놓고도 수확할 수 있다면 그 심정은 어떨까? 태풍피해가 발생한 것도 아니고 비료나 농약을 잘못해 약해가 발생한 것도 아니다. 쌀 알이 차 있지 않은 쭉정이 벼는 왜 생기는 것일까?
쭉정이는 자라면서 혹은 병에 걸려서
벼도 병이 걸렸거나 벼에 꽃이 필 때 비를 맞아 썩었거나 기온이 너무 높고나 낮을 때 꽃가루가 제대로 생기지 못해서 쌀 알이 차지 못한다. 특히 가을의 수확 전 여름에 심한 태풍이나 마른 바람은 벼가 좋은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바지 못하거나 벼 알끼리 서로 더 좋은 영양분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이 일어나도 쭉정이나 반쭉정이가 생긴다.
자라면서 사람과 마찬가지로 벼도 이삭도열병, 잎집무늬마름병, 흰잎마름병, 키다리병, 깨씨무늬병 등과 같은 병에 걸리기도 한다. 여러 가지 병에 걸리게 되면 아예 이삭이 제대로 맺지 못하고 말라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이삭이 패어도 이삭 전체나 일부가 말라 죽거나 벼 알이 제대로 영글지 못하고 쭉정이가 되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혼자 오지 않는 화(化), 벼꽃 필 때의 꽃가루받이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다 보면 입추(立秋)라는 말만 들어도 더위가 조금 누그러지는 것 같다. 입추 무렵은 벼가 가장 왕성하게 익어가는 때 이기도 하다. 비가 많이 오면 벼꽃들이 수정을 제대로 하지 못해 쭉정이 벼가 많이 생겨 흉년이 들게 된다. 벼꽃이 필 때 비가 계속 많이 내리면 피지 않고 닫힌 채 꽃가루 받이를 하게 된다. 만일 벼꽃 속에 빗물이 스며들어가면 부패균이 생겨 썩어 버림으로써 쭉정이가 되기도 한다. 비 외에 가장 피해가 큰 원인은 이삭패기(개화기) 고온 장해이다. 고온장해는 온도가 지나치게 높아 벼의 생육이 나빠지거나 벼꽃에 불임을 유발시켜 쭉정이가 많이 생긴다.
벼꽃은 날씨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체로 아침 9시쯤부터 오후 2~3시쯤까지 피고, 가장 많이 피는 시간은 오전 11시쯤이다. 벼꽃이 피는 시간은 껍질이 열리기 시작하여 닫히는 시간까지 불과 1~2.5시간밖에 안되며 비가 오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날씨가 좋지 않으면 빨리 닫혀 버린다. 벼꽃 피기에 알맞은 온도는 30~35℃이고, 습도는 70~80% 정도가 적당하다.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떨어져서 5분 이내에 발아를 하지 못하면 꽃가루받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벼는 어린 이삭이 만들어지는 시기에 벼 식물체의 영양 상태가 나쁘고 날씨가 좋지 않으면 저절로 어린 벼꽃이 일부 퇴화되어 버린다. 이 경우는 쭉정이도 되지 못하고 아주 어린 이삭가지 상태에서 그대로 시들어버린다. 입추 이후에 비가 닷새 이상 계속 내리면 날이 개게 해 달라는 기청제를 올리기도 했다.
찰기 있고 맛있는 쌀을 얻을 수 있는 답이 있을까?
사진설명 고온에서 여물기 좋게 육종한 자포니카 계열의 벼, 아열대 벼 인디카와 자포니카가 섞인 통일벼(밀양 23호), 우리가 흔히 먹는 자포니카(화성벼)다(왼쪽부터). 자포니카는 쌀알이 짧고 둥글지만 인디카 계열이 섞인 통일벼는 길쭉하다. - 출처: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추수의 계절, 누렇게 익어 고개 숙인 벼를 보면 마음까지 풍성해져야 하는데 해가 갈수록 그 풍성함을 느끼기가 어렵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가뭄과 태풍으로 수확량이 줄어들고 있다. 기상청의 기후 변화 추정치를 토대로 예측한 결과,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로 바뀌는 2040년에는 벼 수확량이 1.7% 감소하고, 2100년에는 28.6%나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벼 농사가 점점 어려워지는 이런 상황에 찰기 있고 맛있는 쌀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벼가 물에 잠기면 산소 공급이 차단돼 이삭 수가 줄거나 쭉정이가 생긴다. 하루 강수량이 80mm 이상, 호우발생 일수도 지금보다 60% 이상 늘어나는 2050년을 생각한다면 침수에 강한 품종이 필요하다. 더워지는 날씨에 대응해 우리 쌀인 ‘자포니카’ 품종의 쌀알 모양을 현재 짧고 둥근 모양에서 길쭉한 모양으로 바꾸는 연구가 계속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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