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도 농사꾼도 쉬어가는 철,
농한기가 아니던가

‘겨울철’은 농사일이 바쁘지 않아 겨를이 많은 때라는 뜻의 우리말이다. 지금부터 농촌은 한 해 농사를 끝내고 휴식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 휴식시간이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일이 없는 겨울의 농촌은 현실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5,000원짜리 백반 한 끼가 25,000원처럼 여겨져 쉽게 지갑을 열 수 없게 된다. 돈이 마르는 농한기를 보낼지도 모르는 요즘, 농가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돌려주오, 농한기
연(年)은 한 해를 뜻하고 말(末)은 나무의 끝이라는 뜻으로 한 해의 끝을 나타내는 말이다. 일 년 농사가 마무리되는 겨울철 농한기에는 짧게 베어진 벼들이 전부이다. 농로를 달리던 경운기도 자취를 감추어 버렸고, 시골 마을의 터줏대감 농사꾼도 찾아 보기 힘들다. 농사일로 바빠 마을 회관에 얼굴 내밀 시간도, 발이라도 걸쳐 볼 시간도 없던 농번기였지만, 겨울철이 되면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 없이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농한기라 하면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침을 챙겨 먹고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들이 자전거, 오토바이를 타고, 할머니들은 골목길 사이에서 삼삼오오 주전부리를 챙겨 들고 하나 둘씩 마을 회관이나 경로당으로 모인다. 각각 할머니 방, 할아버지 방 나뉘어 식사를 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치매 예방에 효과가 좋다는 점 10원짜리 화투놀이 등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다가 저녁 무렵에 돌아간다.
그렇지만, 오늘에 이르러 농한기라는 말, 요즘 세상하고는 참 안 어울린다. 하우스 채소나 과일을 기르고 가축 치느라 사시사철 쉴 틈이 없고, 또 일부는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먹고 살기가 팍팍해져 놀고 싶지 않아서 놀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농촌의 현실이다.
나이 불문 배움의 열기로 뜨거운 농촌
농번기에는 농사일에 매진하다 보면 무엇 인가를 배우고 싶어도 형편이 그러하지 못하다. 먹고 사는게 바쁘지만 마음 속에는 오감만족을 느끼면서 흥겹고 싶은 건 모두 마찬가지. 집에서 한가로이 소주 한 잔 기울이면서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읍, 면 사무소에서는 댄스스포츠나 서예 같은 문화 강좌를 신청하는 분들이 늘고 있다.
세상과 소통하는 시대인 요즘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스마트폰을 쥐고 있다. 스마트 폰을 쥐고는 있지만 어떻게 사용하는 지를 몰라 손주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도 엄두를 못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르신에게는 어렵기만 한 SNS가 4~50대 중장년층에서는 제법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요즘은 농촌에서도 App을 이용한 농산물 거래도 활발해 관련 App 사용법은 물론 전자상거래에도 관심이 많다. 인터넷이나 App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소통하는 직거래 시대인만큼 해가 지날수록 각 지역단체나 농업기술센터 등에서는 SNS 이나 App을 활용한 특강도 심심치 않게 둘러볼 수 있다.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소 일거리
"지금은 쓸모도 없는 지푸라기지만, 예전에는 지푸라기로 못 만들었던 것이 없었어... 요새 애들은 짚신발, 멍석... 이런 거 잘 모르는데. 사람들이 다 잊어도 우린 알거든, 솜씨도 다들 제법이야. 한 번 볼텐가?"
비록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떠났지만 이 마을을 지키고 가꾸려는 어르신들의 마음은 한 겨울 추위도 따뜻하게 녹여준다.농촌 어르신들의 손재주는 세월이 그 답을 준다. 마을회관에 둘러앉아 조물조물 새끼를 꼬면 가늘고 연약한 지푸라기는 어르신의 손안에서 어느 새 멋진 작품이 되어 다시 태어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예품은 직접 판매하여 살림에 보탬이 되기도 한다. 한 해 동안 지은 곡물과 과일 야채 등 농산물들은 전통가공식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면서 농사수익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겨울철 농한기라 할 일 없는 농촌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료하고 지루할 틈 없이 바쁘게 지내시는 마을도 두루 볼 수있다.요즘 대부분 농촌 지역의 읍, 면 사무소나 혹은 지역 중소업체에서도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서 소일거리를 하면서 용돈도 벌 수 있도록 간단한 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농한기를 이용해 짭짤한 부수입도 올리고 농가 경제에도 활력을 불어 넣고 있어 각 지역 지차체 사업 혹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이 없는지 오며 가며 꼼꼼히 들여다 보도록 하자.
의학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농부병’
아무리 세상이 발달했다 해도 사람의 손품과 발품이 필요한 것이 농사다. 농사짓는다고 하루 종일 뙤약볕에 고생하며 일하면서 생긴 농부병은 어느 의학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다. 농촌생활연구소에서 발표한 ‘2005년 농부증 실태조사와 관련요인’에 따르면, 농부병은 주로 밭에서 채소농사나 화훼농사 위주로 하는 노지재배 농업인(27.7%)이나 유리온실이나 비닐하우스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시설재배 농업인(23.6%), 대표적인 논농사인 논벼재배 농업인(23.6%)등에게서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자가 남자보다 많았고, 60대 이상 노인들이 높은 비율로 농부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허리 한 번 못 펴고 구부려 장시간 일하다 보니 각종 관절염이나 허리통증, 어깨통증이 가장 많았다. 또한 비닐 하우스에서 하루 종일 있다 보면 호흡기 질환이 올 수 밖에 없다. 제때 식사를 못해서 영양 불균형으로 건강이 악화되는 경우도 많다. 수확 철 농산물 시세가 심하게 떨어지면 화병이 생겨 불면증과 우울증이 오기도 한다. 의사들은 농부병 환자를 볼 때마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하라고 권유하지만 곧,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되돌아 온다. 증상이 있지만 농번기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통증을 참고 병이 심해지기 마련이다. 농사일이 너무 바빠 병원에 가기 힘들었다면, 농사일이 바쁘지 않은 농한기를 이용해 꼭 검사와 치료를 받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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